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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바람 - 생각

§생샤펠 음악회 - 선행, 종교, 언어, 성격, 예술

1. 선행

저녁에 지갑을 찾아주고, 밤에 장갑을 찾아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건 꽤나 오랜만이었단 말이야. 파리에서, 이렇게 기분이 좋은 적은 드물었다... 고 말하면 파리가 너무 안 좋아 보이고. 그냥 지금까지 자주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고 해야 할까. 친구를 위해 가벼운 선의의 행동은 한 적이 있어도 이렇게 complete stranger한테 선의를 베푼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리고 뭔가를 제공한 적은 사실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다들 행동이고, 나에게 필요 없는 것에 한한 선의였지. 그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 나에게 어떤 방면으로도 출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팔아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매몰비용도 없고(지갑은 있긴 했다 - 5유로. 그러나 내가 그걸 챙겨서 가지게 될 마음의 가책은 그것을 넘어서지는 않을까. 물론 자기합리화를 하면 되긴 한다.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카드들과 신분증과 꺟뜨죈과 나비고는 그 가치를 충분히 상회하고도 남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정말 5유로 정도의 기분상함을 얻게 될 것 같다). 다른 경우에는, 예를 들어 내가 빈에서 교통카드를 팔았을 때나 나중에 중고로 무언가를 팔게 될 경우에는 얻을 수도 있었을 돈을 무시하기 어렵겠지.

 - 그들이 감사했다. 진심으로.

 - 왜냐고? 그들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은 *왜 공짜로 물건을 주었을 때 사람들이 그리 기뻐하지도 감사하지도 않는지 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짜로 주는 물건의 경우 사실 그들이 돈을 주고 살 수 있다. 그냥 현금 조금 아낀 것,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니고 그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렇게 아낀 돈의 경우 주는 사람의 선의에 의존했다기보다는 마치 인터넷에서 좋고 싼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정보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ㅎ 그래도 돈을 주면 고마워할텐데 물건을 주면 왜 안 감사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그저 필요 없어서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걸까. 중고라서 평가절하시키는 걸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도 사실은 중고에 불과한 거다.

 - 추억의 가치?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데서 오는 애착?

그렇다면 그런 물품의 가치가 높은 이유는 추억인 걸까. 아니면, 추억이 없더라도 그냥 자신의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순간 물건에 붙이는 애정도가 증가하는 걸까. 사실은, 자신의 것이라는 이유로 애정의 정도가 감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로 소중하지 않거나 자신은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 해도 친구가 바라볼 때는 급작스레 그 가치가 증가해서 아까워지기 마련이다.

 -  prospect theory?

아니면 그저, 사람은 잃는 것에 더 민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같은 가격대라도 무언가를 얻을 때보다 무언가를 잃을 때 움직이는 행복 지수가 더 크다. 그렇기에, 같은 상향 이동이라 할지라도 0에서 시작해서 +로 가는 것보다, -로 갔다가 그만큼을 다시 회복하여 0으로 돌아오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것이다.

 - 이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으나 이건 선행에서 느낄 수 없는 거다.

내가 선행을 한다고 사람들이 감사하는 건 아니니까! 보람은 감사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원하지도 않는데 선착순으로 뿌려서 형식적인 감사를 받아봤자 나의 행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선행을 하면 기분이 좋은 건 확실한데, 어떤 식의 선행을 해야 가장 효율적인지 모르겠다. 결론은, 봉사를 하면 행복해진다는 게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거다. 


2. 종교

 - 아낌없이 주는 걸 생각했을 때 종교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사람들의 가치 체계나 머릿속을 해부해보고 싶다. 그 속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미래의 천국행 티켓을 예약하기 위해, 하늘에서의 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나올 것 없는 나에게 도와주고,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시간 내주고, 연락하고. 시간과 정성과 돈을 쏟는 건 사실이다. 픽업에다가 프랑스어 수업까지 있고. 

 - 그들은 행복할까?

그래서 행복할까? 사람들은 사실 감사하지 않는다. 나도 감사한다고 말은 하지만 잘 모르겠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기분을 느낄 테지만 - 그들은 감사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개종했을 때, 그 결과물에 속 시원함을 느끼고 보람을 느끼는 걸까. 마치 퍼즐을 푼 것처럼. 어려운 퍼즐일수록 그 기쁨이 커지는 것처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러면 윗 사람에게서도, 주변 사람에게서도 인정을 받으니 일타이피가 아닐 수 없다. 아마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감사에는... 개종한 뒤의 감사에는 정말 보람을 느끼겠지만, 단순한 도움에 대한 감사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언어

 - 클래식은 언어와 같다.

자주 들어야 그나마 따라할 만하고, 자주 들어야 좋아하게 된다. 항상 생각했던 거다. 마치 익숙한 발음에 대해서만 딱딱 알아듣기 편한 것처럼, 익숙한 음계와 익숙한 화성이 들어가야 딱딱 알아듣고 머릿속에 저장할 수 있다. 이상한 아시아 발음은 듣기도, 따라하기도, 기억하기도 다 어려운 것처럼. 그러므로 일단 언어처럼 마구잡이로 다 들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럴 때면 클래식 음악과 언어의 작용 중추를 비교해보고 싶다.ㅇㅇ

 -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도전하는 게 재미있다.

만약 미국에 갔으면, 물론 책 읽는 속도나 기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의 답답함의 정도 같은 곳에서 내 영어가 부족함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 같긴 하지만, 이만큼 재미는 없었을 거다. 아니, 오히려 꽤 잘한다고 생각했던 영어가 이렇게나 부족함을 깨닫고 침울해졌을 지도 모른다. 가서는 영어 어학 수업따위도 듣지 않을 테니. 그러나 마치 내가 고등학교를 외고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영어에서 여전히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 나의 자존감에 도움이 되고(내가 프랑스어를 못 해서 바보같이 느껴질 때면 영어를 그 앞에서 함으로써 눌러버리는 상상을 하면 괜찮아진다. 왜냐면 얘네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고 내가 영어를 잘 하면 한국어를 잘 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단하단 눈으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어차피 내가 못 하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못 해도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느는 것도,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데 도전하는 것도 재미다. 이런 도전은 영어권에서는 못 했을 거다. 이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후회는 없다. 도전은 나름 성공적인 것 같고, 재미있다. 나는 행복하다. 


4. 성격

 - 그러고 보면, 나의 도전이 가능한 것은 나의 성격 덕분이다.

나의 성격은 통상적인 한국인 같지 않은 것 같다. 더 도전적이고, 더 다가가고, 일단 말 걸고 보고, 친한 척 하고. 조금 외국인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말 하는 걸로 사람들이 내가 교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그런데 내 성격이 어떻게 형성된거지?

 - 고등학교까지는 절대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조용한 모범생, 중학교 때는 다크하고 찌질하고 쪼잔한 모범생, 고등학교 때도 신경 날카롭고 사람 가려 사귀는 소심한 모범생. 대학교 가서 확 바뀐 것이다. 물론, 기억한다. 대학교 가서는 바꾸겠다고 결심한 것을. 그래서 너무 과하게 노력해서 바보같은 짓도 많이 했던 것을. 그러나, 내가 원한다고 그게 휙휙 바뀌는 거였나? 성격이? 물론 내 성격이 조금 외향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내부까지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나의 급진적 변화의 노력이 보상을 받아서 정착되고 강화된 건 아닐까.

대학교 때의 도전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 피드백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팩트 이상이 될 수 없다. 과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동문회에서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날뛰고 기분 좋고 행복했던 곳은 영원한 나의 마음의 고향. 임팩트. 모두 신입이라고 예뻐해주고, 내가 떠들면 받아주고, 밤새 300+가 뜨도록 이야기하고. 새대는 내가 모으려고 해도 잘 되지도 않았단 말이야. 그 곳에서 시도했던 깝죽대고 말걸고 신나하는 신입생의 성격이 잘 먹혔기 때문에, 거기에 긍정적인 피드백에 계속 들어왔기 때문에 내 성격이 정착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전에 나는 외국인이랑 만나지도 않았고... 폴이랑도 겁나 어색해했고..... 내 성격이 외국인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일이 없었다.

 - 나는 실험을 했다.

대인관계향상프로그램, 내가 했던 그 곳에서 내 새로운 성격을 테스트할 수 있는 세이프티 존, 이라는 느낌의 설명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그걸 내가 이미 대학교 때 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꽁꽁 숨어 개발될 일이 없었던 나의 대인 성격이, 손 대기 이전의 말랑한 뇌와 같은 상태에서 대학교 1학년을 거쳐 형성되고 굳어진 거다. ...뭐 이것도 얼마 전에 읽었던 너무 과한 심리학 활용 어쩌고 일지도 모르지만. 여튼.

나는  외향적이고 친근한 나의 성격이 마음에 든다.

(다른 동양인과 비교되는§! 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이건 나중에 또 이야기할 거리가 될 듯 하다.)

나. 친근함. 성공적. 

물론 피곤하기야 하지만. 여기는 괜찮은 듯. 그것도 신기하네. 한국에서는 그렇게 대인관계가 피곤할 때가 있었는데.


5. 예술

 - 나는 행복하다.

물론, 나에게 질문을 던질 때 나는 항상 생각한다.


"물론, 나는 행복하지!"


하지만 내가 그 질문을 정말 자주 던지는 건 아니다. 가끔 던지고, 그냥 감흥 없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고는 하고. 그건 내가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일이 잦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멍 때릴 시간이 많은데도 나는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손을, 눈을, 생각을 뗄 수가 없다. 명상이 필요하다는데. 휴. 그런 의미에서 그런 '멍 때릴 시간'을 주는 예술에 감사한다.

 - 명상 = 멍 때리기 ≒ 의식의 흐름 = 딴 생각

내 생각에는 그렇다. 단지 현재에는 신경 쓸 거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일 뿐. 

그러고 보면 내가 고쳐야 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생각났다. 나는 예술 작품을 볼 때면, 떠오르는 나의 감상들과 생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한다. 그게 뭐라고. 처음에는 자연스레 생각을 따라가다가도 - 그 생각이 뭔가 괜찮아 보이니, 일기에 적기 위해 그 생각을 단어 하나로 형상화시켜 머리 한 구석에 저장하고자 한다. 그러나 얼마 전에 읽은 기사에서 보았다. 인간의 뇌는 수렵 생활 이후로 진화하지 않았다고. 최대 3개가 한계라고. 그리고 한계 이전에도 분명히 과부하가 걸려 집중을 방해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감상을 기억하고 잊지 않고 보내지 않기 위해 현재의 감상을 포기한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이야. 어차피 사라질 것을. 써봤자 읽지도 않을 것을.(사실 읽어야 하는데)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생각을 없애는 거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깝고, 그나마 가까운 의식의 흐름, 생각에 고삐를 매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도록 두는 것. 그것이 뇌 '새로고침' 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러면 예술은 명상에 가까운 걸까.

잠깐, 상상력과 이성의 자유로운 유희 아냐 이거?

결론은 칸트도 이렇게 예술 보면서 딴 생각 했던 건가.

 - 딴 생각도 나름의 즐기는 방식이다.

대화를 시작했을 때의 주제와 끝날 때의 주제가 다르다고 해서 그 대화가 의미없거나 잘못된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술 작품을 보면서 작품 이외의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그 생각이 잘못됐거나 의미없는 건 아니다. 예술 작품을 보며 딴 생각을 하는 것도 예술 향유의 한 방법이다. 나는 이제 이 향유 방법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자꾸 기억하려고 고삐를 매려는 건 자제해야겠지. 그런데 방금 정리하다 생각난, 자유로운 유희, 를 보니... 음, 옛 선현들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구나 싶다. 오히려 지금까지 예술을 보면서 그 예술에만 집중하려고 애썼던 것이 오히려 제대로 된 감상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 딴 생각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한다.

오만 잡다한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은 결국 자신을 향한 이해로 다다른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언어가 재밌다는 생각을 했고, 종교도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 언어는 아니고 moral에 대해 생각하다가 종교를 생각했고, 오랜만에 정말 철학 학도답게 철학적인 생각, 논리적인 분석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금 종교로 향했다. 프로이트에 대해 쓸 때 텍스트 분석을 때려치우고 그냥 현재 왜 종교가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인지를 한 바닥 썼던 기억이 났다. 나, 종교 철학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학교에 종교 수업이 있나 확인해 봐야겠다.

여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 그래서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 science humaine이다.

아니 뭐 사실 예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봐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아니지, 현대 예술은 작가가 표현한 거 말고 봐도 괜찮잖아.

그러면 그냥 작품에 없는 거 봐도 무슨 상관이야?

예술은 그냥 거울과 같은 거다.

나 자신을 비추고 내가 속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게 예술의 의미이고, 시작이자 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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